Thursday, July 18, 2013

로마 건국신화 Founding of Rome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서사시 {아니네아스}(Aeneid)에는 로마의 건국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트로이가 함락되던 그 밤, 트로이의 영웅이던 아니네아스는 전쟁의 와중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도 아버지와 아들과 그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트로이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일행은 트라키아, 델로스 등지를 거쳐 이탈리아 근처까지 갔으나 풍랑을 만나 아프리카 해안까지 말려갔다. 그곳은 당시 티루스의 이민들이 그들의 여왕(Dido)의 지도하에 새로운 국가를 세워, 나날이 융성해가고 있던 터였다. 디도는 본래 티루스의 왕 베로스의 딸이며, 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피그마리온의 여동생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쉬카이오스라고 하는 대단한 재산가였는데, 피그마리온이 재산에 눈이 어두워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자 디도는 많은 친구와 부하들을 데리고 몇 척의 배에 쉬카이오스의 재물을 가득 싣고 티루스를 탈출하여 이곳으로 온 뒤 주민들에게 한 마리의 쇠가죽으로 둘러칠 땅이라도 좋으니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이 부탁을 받아들이자, 그녀는 쇠가죽을 길게 잘라 몇 개의 끄나풀을 만들고 땅을 둘러친 다음 그곳에 성을 세우고 비루사(쇠가죽)라고 이름 붇혔다. 바로 이 성을 중심으로 카르타고가 생겨난 것이다.

아이네아스 일행이 그 곳에 도착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디도는 이들을 친절하게 맞았고 환영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 때 벌어진 경기에서 아이네아스의 솜씨에 반한 여왕은 그의 모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사모하게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몇 달의 꿈같은 시간이 지난 뒤 아이네아스는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어 디도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디도는 사정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로 향하게 되었고 두 번씩이나 애인을 잃은 디도는 장작과 더불어 한줌의 재로 변했다.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의 티베르 강가에 닻을 내렸을 당시, 그 곳을 지배하고 있던 왕은 라티누스(Latinus)였는데, 그에게는 라비니아(Lavinia)라는 딸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웃 나라 왕족들에게 구혼을 받고 있었다. 그 중 투루누스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라비니아의 부모에게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런데 라티누수라는 어느 날 꿈속에서 선친인 화노스로부터 라비니아의 남편은 다른 나라에서 건너 온 사람으로 정해야 하며, 그들의 후손이 전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한편 아이네아스는 자기가 도착한 곳에 어떤 종족이 살고 있으며 또 그들의 왕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백 명의 뛰어난 부하들에게 선물을 주어 마을로 보냈다. 이들을 맞아 자초지종을 들은 라티누스왕은 이 트로이의 영웅이야말로 장래의 사위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기분 좋게 동맹을 허락하고 많은 답례품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안 투루누스왕자는 낯 모르는 이방인에게 여자를 빼앗긴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네아스와 라티누스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양편은 서로 간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아이네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아이네아스는 민족간의 공고한 단결을 통해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가며 라틴인을 지배했다.

아이네아스로부터 13대 후에 알바의 왕 프로카스는 누미토르(Numitor)와 아물리루스(Amulius)라는 아들을 남기게 되었다. 장자인 누미토르가 왕위를 계승했으나 흑심을 품은 아우 아물리우스가 왕위를 빼앗고 형을 국외로 추방하였다. 또한 남은 가족들 가운데 아들은 죽여버리고 딸인 레아 실비아(Rhea Silvia)는 베스타(Vesta) 신전의 무녀로 마들어 일생 동안 처녀로 살게 하였다.

실비아는 어느 날 베스타 신전에 바칠 물을 떠오기 위해 마르스(Mars) 숲에 갔다가 늑대를 만났다. 당황한 실비아는 동굴로 숨었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마르스 신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실비아는 쌍둥이 형제를 낳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물리우스는 쌍둥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신하는 차마 어린 두 생명을 죽일 수 없어, 광주리에 두 아기를 담아, 티베르 강에 띄워 보냈다. 다행히도 티베르 강의 범람으로 인해 두 아기를 담은 광주리는 무화과 나무 위에 걸리게 되었고, 그 후 암늑대인 Faustulus가 두 아이에게 젖을 먹여 양육하였다.

어느 날 양치기가 그 두 소년을 발견하여 자기의 아들로 키우게 되었고 그들은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라는 이름으로 파라티누스 언덕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어느 날, 두 형제는 양치기로부터 자기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듣게 되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두 형제는 자기들을 따르는 무리들과 힘을 합하여 아물리루스를 물리치고는 외할아버지인 누미토르를 다시 왕으로 모신 뒤, 자신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들은 도시를 세울 장소 문제로 의견이 엇갈려 서로 싸우다가 동생 레무스가 죽고 말았다. 그 후 로물루스는 혼자서 카피톨 언덕 위에 도시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였다.


   
     

보통 로마인들에 대해서 개방적이고 실용주의 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전투에 이겨 정복한 나라에 대해서도 그들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존중해 주었고, 정복민에 대한 로마시민권부여와 스스로의 자치를 인정해주기도 했다. 또 그들은 개인간의 능력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해주었다. 로마인은 세계사에서 다신교를 인정하면서 제국을 건설하였던 유일무이한 민족이라고 한다. 테베레강가의 작은 농업국가에서 광대한 영역을 가진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그들의 개방성- 패자까지도 자신들에게 동화시키는- , 개척정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로마인들은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수준높은 문명을 이룩해놓았던 그리스에 대해 로마인들은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으로, 아이네이아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그가 그리스군에 의해 함락된 트로이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아프로디테가 도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건국신화에 그리스의 여신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로마인들게도 그들의 전통적인 신들이 있었지만, 다른 민족 특히 그리스의 신들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신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주고 차츰 전통적인 로마 신들과 같이 만들었다. 너무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로마인들은 신성화시키는 것을 좋아했는지, 나중에는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도 죽은뒤에 신격화되기도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는, 로마인들이 신들에게 요구한 것은 '수호신' 역할이라고 한다.

수도 로마를 지키는 것은 최고신 유피테르를 비롯한 신들이고, 싸움터에서는 군신 마르스나 야누스 신이 그들을 지켜주고, 농업은 케레스여신이, 포도주 제조는 바쿠스 신이, 경제력 향상은 메르쿠리우스 신이, 병이 나면 아이스쿨라피우스 신이 지켜주고, 행복한 결혼과 여자를 지켜주는 것은 유노 여신이었다. 로마인들은 이런 수많은 신들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로마인들은 타민족들의 신들을 배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신은 수호신이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구석구석까지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펴 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야누스(Janus)
야누스(Janus)는 사물의 시초를 주관하는 신이다.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누마'는 출입문의 수호신이며 전쟁의 신이기도 한 야누스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었다. 야누스신은 반대방향을 향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누마는 완성된 야누스 신전의 앞문과 뒷문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이 문은 전시에는 열리고 평화시에는 닫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마가 로마를 다스린 43년동안, 이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영어로 1월을 'January'라고 하는데, 그것은 '야누스의 달'이라 하여 야누스신의 이름을 따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 베스타(Vesta)
국가와 가정의 솥을 주재하는 여신. 베스타의 신전에선 베스탈이라고 하는 여섯명의 처녀 제사가 수호하고 있는 성화가 타고 있었다. 로마의 신앙에 의하면 국가의 안녕은 이 성화의 보존과 관계있으므로, 처녀 제사의 태만 때문에 그것이 꺼지는 일이 있을 때는 그녀들을 엄벌했고 꺼진 불은 태양광선에 의하여 다시 점화되었다. 그리스의 헤스티아 여신.

# 사투르누스(Saturnus)
그리스의 신 크로노스와 동일시되는 사투르누스는 전설에 의하면 아들 제우스에 의하여 폐위되자 이탈리아로 도망하여 세칭 황금시대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동안 그곳에서 재위하였다고 한다

# 마르스(Mars)
전쟁의 신. 전쟁뿐 아니라 농작물 경작도 담당했다.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에 해당한다.

# 플로라(Flora)
꽃과 열매의 여신. 고대 로마인들은 모든 사물과 생명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 팔레스
가축과 목장을 주재하는 여신.

# 파우누스(Faunus)
사투르누스의 손자. 들과 목자의 신으로 숭배되었고 예언의 신으로서도 숭배를 받았다. 그리스 신화의 '판' 과 동일시된다. 그의 이름의 복수형인 파우니는 그리스의 사튀로스와 같이 익살스런 신들의 일단을 의미했다.

# 테르미누스
토지 경계의 신. 그의 상은 거친 돌이나 기둥으로서 들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지상에 세워져 있었다.

# 퀴리누스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는 죽은후에 퀴리누스라는 이름의 신으로 추앙되었다. 그는 39년동안 왕위에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폭풍우속으로 사라졌다.
   
           
       http://www.france.co.kr/europ-class/greece/romulus.htm

Tuesday, July 2, 2013

아랍 음악이 그리스 음악과 흡사한 이유는...

아랍 음악이 그리스 비잔틴 음악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이 걸 반대로 알고 있는 무식한 놈들이 많아서 한숨만 나온다.... 아랍이 그리스 로마에 영향을 받은 건데 거의 대부분의 무식한 한국 미국놈들은 반대로 알고 있다....ㅉㅈㅈ바보들...그리고 터키인자체가 원래 대부분 아랍화된 그리스인인데  무슨  반대로 그리스인이 터키인이랑 섞인 것 처럼 반대로 알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원래 부터가 까만머리에 까만눈을 가졌고 아랍인들과 터키인들에게 까만머리와 까만 눈을 준 거다 그 반대가 아니라...아랍인들은 원래 처음부터 그리스인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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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lexus is extremely unreliable compared to benz, audi, bmw because their reliability comes from slow speed, simple old engineering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