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9, 2014

올바른 인종 구분


백인종
•그리스-이탈리아 인종=헬라스족(발칸반도 소아시아), 라틴족(서남유럽, 중남미) 아랍족(서아시아), 베르베르족(북아프리카), 콥트족(이집트), 아이누족(일본),폴리네시아, ...
•유럽-아시아 인종=켈트(중유럽),게르만(중북유럽),노르딕(북유럽),슬라브(동유럽, 북아시아),불가르족(중앙아시아),쿠르드족(터키등) 파쉬툰(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족(이란), 투르크족(터키), 카자르족(중앙아시아)

황인종
•동아시아 인종(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몽골 인종(중앙 아시아)
•인디안 인종(미주 대륙)

흑인종
•중남 아프리카 인종(사하라 이남 중남 아프리카)
•오스트랄로이드 인종(남아시아, 호주)
•니그리토 인종(동남아시아)

Friday, March 28, 2014

아테네 검은 도자기 제작의 장인...

쏘필로스, 클레티아스, 네아르코스, 리도스,엑세키아스, 아마시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예술을 탄생시킨 이 장인들을 기립니다...

Thursday, March 27, 2014

한국인들의 연기 잘하는 기준은 뭐냐?!?

대체 조선인들의 연기잘하는 기준이 뭐냐?!? 내눈엔 일본 배우들이 훨씬연기 잘하고 조센 배우들은 연기 진짜 못하는데 조센인들은 항상 나와 반대로 말하고 있다...소리지르고 성질 나쁜 연기 눈알부랄리는 걸 잘하는 게 연기 잘함의 기준같다 자이언트때도 주인공 이범수가 제일 연기 잘한 거 같은데 눈알 잘부라린 연기한 정보성이 최고였다 하질 않나 나의 기준은 적절하고 미세한 표정 변화 미세한 감정전달이다...이범수가 젤 잘했다

Saturday, March 22, 2014

이집트가 그리스 학문 발달에 도움을 주었다

이집트가 초반에 기하학과 철학에서 그리스 학문 초기 발달에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이집트의 문명은 그리스 초기 문명 발달에 일조한데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후대에 그리스가 이집트가 이룬 문명보다 더 찬란한 발전을 이루고 잎서나갔다...그리스가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역사다...

greek exceeded and advanced much furthern than egyptian in every aspects.

Greeks advanced the most in history of human kind.

Friday, March 21, 2014

동양뽕들의 그리스문명이 이집트에서 배워서 우월하다는 어이 없는 논리

비유를 들자면 전자계산기 만드는 기술을 중국의 주판에서 전부 배워왔으니 전자계산기보다 중국의 주판이 우월하다는 어이없는 논리나 마찮가지..

[평범스트]

플라톤이 그리스같은 후진국이 이집트같은 선진국을 배척해선 안된다고 하긴 함
2014.03.22 00:56

[평범스트]

물론 지금 현대인이 서양을 추구하는거랑은 다르게 일부에서는 그런 시각이 있었다 정도지만
2014.03.22 00:57

[알렉산드리아]68.98.**.**

전자계산기만들기 전에 중국의 주판이 선진기술이라고 하면 후대에 전작계산기가 나왔을때 그 기록이 계속 유효하냐?!?
2014.03.22 01:00

[알렉산드리아]68.98.**.**

미국이 영국을 초기에 선진국이라고 하면 후대에 발달한 후에도 계속 영국이 미국보다 선진국이냐?!?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2014.03.22 01:01

[알렉산드리아]68.98.**.**

그리고 탈레스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생소한 지식들을 습득한 건 사실이지만 그딴 소리를 지껄인적은 없다 언제 플라톤이 그리스같은 후진국이 이집트같은 선진국을 배척해선 안된다고해 그리스가 이집트를 배척한 이유는 자기 문화에대한 우월감에서ㅜ나오는 것인데...
2014.03.22 01:05

[평범스트]

발전이야 계속 하는 것이고 당시에 선진기술이 이집트에 있었고 그리스가 배운 것이 있다면 이집트가 일부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지 그럼 현대인들이 피라미드나 타지마할을 보고 왜 경탄을 하지?? 너 말대로 현대기술론 타지마할따위 백개도 넘게 만들 수 있는데 그건 결국 그 당시 수준 전재하에 찬란한 건축물이다 판단하는거 아닌가?? 넌 결국 현대 혹은 후세와 비교를하며 말도안되는 퍄러다임에 빠져있다
2014.03.22 01:05

[알렉산드리아]68.98.**.**

오히려 발전한 후대기술보다 선대기술이 더 우월하다는 동양뽕들의 헛소리를 지적하고 있는데 뭔소리야...
2014.03.22 01:10

[알렉산드리아]68.98.**.**

동양뽕들이 자꾸 우월론 내세우느라 거짓말 퍼뜨리거 없는 말지어내고...ㅉㅉ
2014.03.22 01:12

[평범스트]

ㅉㅉ 너도 ㅂㅅ인게 이집트는 코카시안이다. 몽골리안들이 암만 이집트자위해봤자 전혀 다른 인종이다 오히려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에 더 가깝지
2014.03.22 01:14

[알렉산드리아]68.98.**.**

이집트는 그리스 펠라스기안이 세운 국가다...그리고 그리스의 선대 문명인 이집트가 역사상 가장 발달한 그리스 본기 문명보다 더 우월하다는 헛소리를 하길레 글 써 본거다...
2014.03.22 01:16

[알렉산드리아]68.98.**.**

지식이 없어서 그정도 같은 코카시안 그정도 생각밖에 할줄 모르면 댓글 달지 마라 글을 좀 자세하게 읽던가...
2014.03.22 01:18

[알렉산드리아]68.98.**.**

그리고 플라톤이 언제 저딴 소리를 했어 막 없는 소리도 지어내고...
2014.03.22 01:19

[평범스트]

아니 난 전혀 헛소리 할 생각이 없지만 난 전혀 내 주관을 넣지않고 내 아는 바만 말했다만??
2014.03.22 01:20

[평범스트]

내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리스 어떤 철학자가 저런 말 했다가 몰매맞았다는건 팩트다 확실히 기억한다
2014.03.22 01:21

[평범스트]

그리스 전문가라더니 자기 입맛대로만 알면서 잘난체하는구나
2014.03.22 01:21

[알렉산드리아]68.98.**.**

그런 소리는 없음 난 그리스 역사에 정통함...물론 이집트에서 초기 기술적 기하학을 접한 건 사실이지만 그리스인들은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감이 있었다...이집트를 배척한 이유가 그거지...기하학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킨 본기 그리스가 더 위대하다...
2014.03.22 01:25

[알렉산드리아]68.98.**.**

그리스인들은 전반적으로 자기들 문화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실제로 문화 철학 학문 예술에서 이집트를 전반적으로 앞서 있었고...
2014.03.22 01:27

[평범스트]

니가 모르면 없는건가? 난 너처럼 자칭좆문가가 아니기때문에 그딴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위의 말은 전혀 헛소리가 아니며 내가 확실히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기때문에 너보다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몰랐다고 인정하지?? 니가 검증받은 책보다 더 뛰어나다곤 할 수 없겠지
2014.03.22 01:30

[평범스트]

것도 누군진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사크라티나 아리스타틀같이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철학자였다
2014.03.22 01:31

[알렉산드리아]68.98.**.**

당시 이집트가 고도의 문명국가로 받아들여진 건 맞는데 말은 지어내지 마라 어디서 확실히 기억도 안나는 걸 지어내갖고 플라톤이했느니 거짓말을...
2014.03.22 01:39

평범스트]

걍 니가 믿고싶지 않다고 하지그러냐?? 정확한건 기억이 안난다는거지 내용자체가 기억 안난다는건 아니니까 ㅋㅋㅋ 왜 uri는 그럴리가 없습nida!!!의 그리스판이냐 ㅋㅋㅋ 인정할걸 인정할 줄 모르고 그저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까기만 바쁜 전형적인 조센징의 후예답구나 니가 그냥 조센징과 다른 점이라면 그리스에 대해서 초딩코딱지만큼 안다는 것 뿐이다
2014.03.22 01:42

[평범스트]

믿던지 말던지 그건 니 알아서해라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건 전혀 헛소리가 아니며 책에서 본 내용이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절대불변의 사실이란 것이다. 니가 정말 깨닫는 바가 있다면 좀 안다고 남을 깔보고 설치지말고 공부를 좀 더 하도록 하여라
2014.03.22 01:44

[알렉산드리아]68.98.**.**

니 지어낸 소리를 받아들이라고?!? 억지여 뭐여 그리고 내가 말하는 요점은 이집트는 그리스인들이 세운국가이고 초반에 이집트가 문화의 영향을 준 게 있다고 해도 그 당시에도 전체적인 문화 수준은 그리스가 위였고..시대의 문화 진보를 고려 안하고 각자의 시대의 문화의 업적은 그리스가 역사상 제일 위대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다...
2014.03.22 07:31

[알렉산드리아]68.98.**.**

니가 말하는 건 플라톤이 철학은 이집트에서 왔다는 내용을 보고 이상하게ㅡ기억해서 지어낸 말 같다...이 글은 시대상을 제외하고 비교하면 그리스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단 글이고 이집트가 단순히 초기에 철학 기히학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이집트가 더우월하다는 듯이 말해서 주판이 계산기의 발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여 주판이 계산기의 발명보다 더 위대하다는 건 아님을 비유를 들어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일러주는 글이다...
2014.03.22 07:44

[알렉산드리아]68.98.**.**

그리고 그리스 본국이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이집트는 중요하지만 그리스 본국 역사에 비하면 떨어진다고 해도 이집트 자체가 그리스인들이 세운나라이고,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에 정착하기 직전 역사고 그리스 미노아인들이 도자기 예술은 이집트에 영향을 끼치는등 서로 영향을 미쳤지 이집트가 일방적으로 끼친 것도ㅠ아니고 이집트가 기하학 철학적인 영향을 끼칠때조차 그리스의 다른 문화 수준이 전반적으론 더 우월했다...그 후대에는 역사상 최고고...
2014.03.22 07:48

지중해인종을 그리스 이탈리아 인종으로 불러야 되는 이유

역사중에 가장 중요한 역사가 그리스 이탈리아 역사이므로 역사의 중심과 지중해인종 중심은 그리스 이탈리아므로...지중해 인종을 아랍인종으로 하면 아랍역사는 중요하긴 하지만 그리스 이탈리아 역사에 비하면 하찮고 아랍인은 모든 문화 문명 예술 학문을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배웠는데 지중해 인종을 아랍인종으로 아랍 중심적으로 하는 건 중심이 아닌데 중심으로 세우는 건 부당하기에 지중해와 넘어서 세계 역사의 중심 그리스 이탈리아를 인종이름으로 사용하여 아립인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인종으로 구분짓는게 옳다...

아랍인들은 과학 철학 음악 미술을 로마에서 배웠다...

중동에 과학이 있었던이유는 로마(비잔티움)제국을 침략하면서 학문 음악 미술을 배웠기 때문...원래 아랍인들자체가 그리스이탈리아 인종이지만...

동양뽕은 그냥 유태인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휘둘리는애들

유태인들이 그리스인들의 후손이라 머리는 좋지만 자기들이 서양에 기생해서 사는데 동양뽕들은 유태인들이 만들어 놓은 자기들이 서양의 문명을 만들고 똥양문명따위도 서양문명과 비교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그대로 믿음...의학의 아버지가 누구임?!? 바로 소크라테스 누가 페니실린 만듬?!? 플레밍 파스퇴르...유태인들 거짓말이 이모든 것들을 사실은 유태인들이 만든 거 같은 인상을 무식한애들한테 뿌리는 건데 지식이 없는 무식한 동양뽕들이 속아넘어가는 경향이있네...

[정마-]

그래서 그 위대한 그리스문명 세계 4대문명에 들어가겠죠??
2014.03.22 00:22

[알렉산드리아]68.98.**.**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모든 예술 학문 역사 법 과학 철학 등등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공헌을 한게 그리스-로마 문명이다...역사상 가장 중요한 역사니 다른 역사는 알필요가 없고 그리스 로마사면 알면된다...
2014.03.22 00:27

[정마-]

내용이 전부 개소리라 반박도 귀찮네요 예술 학문 과학 법 철학 신화 전쟁기술 건축학 전부 페니키아랑 이집트에서 배워온건 아시는지??
2014.03.22 00:29

[정마-]

적어도 유럽사 씨부릴라면 블랙아테나정도는 읽고와야되는거 아니냐?
2014.03.22 00:29

[미시사가]128.174.**.**

유태인이 그리스인의 후손이라고?
2014.03.22 00:31

[하하하]218.54.**.**

ㄴ애초에 페니키아 이집트가 잘도 니들 우덜이 말하는
2014.03.22 00:31

[하하하]218.54.**.**

'동양'이겠다 ㅋㅋㅋ
2014.03.22 00:32

[정마-]

적어도 문화 나라 국격수준은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동양이 엎치락 뒤치락 했는데 무슨
2014.03.22 00:32

[정마-]

황하문명은 미개한 짱꼴라 문명이라 취급 안하시나봅니다
2014.03.22 00:33

[정마-]

동양뽕이고 서양뽕이고 있는 사실 인정하면되지 왜자꾸 하나 못까내려서 안달이냐??
2014.03.22 00:33

[알렉산드리아]68.98.**.**

이집트 페니키아는 그리스인이 세운 국가고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 페니키아의 문명보다 훨씬 발달한 상탠데 그리고 페니키아는 그리스가 문자를 차용한적이 없다 그리스에는 페니키아보다 훨씬 오래된 문자가 있고 이를 페니키아에서 차용을 한 거지...
2014.03.22 00:33

[정마-]

아 정신병자였네요 병먹금하겠습니다
2014.03.22 00:36

[정마-]

타임머신 태워서 보여드려야 믿는답니다
2014.03.22 00:36

[알렉산드리아]68.98.**.**

정마 같은 논리가 너무 바보스러운게 그럼 리조또를 만든 이탈리아인의 음식은 중요하다 하닌깐 원시인이 과일을 따기 시작한 걸 이탈리아인이 배워온 거다라고 말하고 있음...그러니이탈리아인이 한 건 없고 전부 원시인이했고 원시인이 위대하다...
2014.03.22 00:37

[정마-]

그렇게 위대한 문명이면 당연히 4대문명 안에 들어가겠죠?? 결국 처음으로 돌아오네 역사가들이 다 병신임??
2014.03.22 00:38

[알렉산드리아]68.98.**.**

이집트 초기 문명이 초기 펠라스기안 그리스 사람들이 세우고 온 떠나온 국가라 그리스 초기 문명이라고 후대에 고도로 발달 시킨 문화 학문까지 이집트에 배운 거랑 어이없는 어이없눈 논리 그럼 지금 bmw가 수레바퀴한테 차만드는 기술을 배운다는 어이없눈 소리나 다름 없음...
2014.03.22 00:41

[정마-]

그리스 사람들이 세우고 떠나온 문화랍니다 ㅜㅜ 논리와 신념이 환빠수준이라 더이상 안되겠네요
2014.03.22 00:42

[알렉산드리아]68.98.**.**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 초기 문명인데 당연히 후대에 발달된 본 그리스기 문명이 훨씬 발달했지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네...마치 지금 영국이 중세 영국보다 발달했다는 소리를 황당하다하는 황당한 소릴 다듣겠네...
2014.03.22 00:44

[알렉산드리아]68.98.**.**

아르키메데스의 유체정역학같은 그리스의 발전에 비하면 훨씬 선대의 그리스의 초기 문명인 이집트 문명은 하찮다...
2014.03.22 00:47

[알렉산드리아]68.98.**.**

후대 그리스의 예술 미술 음악의 찬란한 발전에 비하면 선대 그리스 예술인 이집트 예술은 하찮은 수준 맞지... 그리스에서 발달 시킨 거까지 이집트에서 배웠다고?!? bmw가 수레바퀴에서 자동차 만드는 기술 배웠단 소리랑 뭐가다름 ㅋㅋ

Saturday, March 15, 2014

친일하다가 반일하다가 하는 여비한 흡혈귀같은 친일파...


68.98.**.**

열등감이 문제가 아니라 거머리같은 야비한 친일파들이 일본을 이용해먹구 일제가 나가자 단물 쫙쫙씹고 뱉은 일본을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을 이용해서 또 단물응 쫙쫙 뽑는 비열하고 야비한 친일파(사실 친일이 아니지만)들이 문제....그러다가 지들의 반일논리로 지들의 과거 친일짓이 비난받으면 바로 친일논리를 펼치고, 야비한 놈들이지...

일본은 만화로 성경과 카톨릭 성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돼...

그게 진정으로 자신들의 재능을 쓰는 길이야... 우선 성경이야기 구원의 복음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Friday, March 14, 2014

근대사는 알필요없다

고대사만이 중요하다....고대사를 알아야 유식하지 근대사는 많이 알면 알수록 무식해진다...근대사 아는 사람은 흔해빠졌다...

Thursday, March 13, 2014

야구팬들은 열들감에 심하고 수준이 낮은 인간들이 많다

스포츠중 최고의스포츠 축구가 야구 따위 비인기 스포츠에 열등감을 갖을게 뭐가있나요 축구에 열등감갖고 먼저 시비 건게 누군데...그리고 축구팬은 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되지만 야구팬은 미국밖에 몰라서 무조건 미국 미국 외치며 무식하고 편협하죠...야구선수들이 그렇게 야비한 범죄를 잘 저지르고 생활이 문란한 이유가 뭔가요? 마찮가지로 이유는 모르지만 야구팬들중에도 열등감이 심하고, 야비한 인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Tuesday, March 11, 2014

경상도가 조센의 원조인게...


급한성격도 조센내에서도 최고로 유명하고 조센내에서도단순무식  공격적인 성격 시끄러운 걸로 젤 유명.......맵고 짠거 좋아하는 것도 조센내에서 유명 즉 조센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본고장이리 조선내에서도 조선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곳이 경상도임... 조센내의 조센징이 경상도임.... 사실 조센 나라가 급한 성격 욱하는 성격 맵고 짠음식 좋아하고 이런게 신라가 이기면서 신라 조선의 본고장 경상도인들이 한반도 각지로 피지면서 이렇게 된거 것으로보인다...역시 신라=조센의 본고장 경상도...

Saturday, March 8, 2014

바실리우스 2세가 일과 사랑에 빠진 것은 아주 어렸을때의 일인듯...

로마노스 1세의 아들인 의회의 의장 리카페노스가 어린 바실리우스 2세를 대신해 실정 운영하며 국정을 돌볼때 어린 바실리우스 2세는 현명하게도 아무런 참견없이 묵묵하게 그의 옆에서 정사와 군대 운용을 그에게서 눈으로 보고 배웠다...바실리우스 2세의 일에 대한 동경은 아주 어렸을때부터 싹텄던 것이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역사인물


바실리우스 2세... 놀거나 향락에 빠지지않고 여자를 돌깉이보고, 황제가 직접 전장에 나가서 군대를 직접 이끌고, 밤낮 궁전에 쌓여있는 서류들을 묵묵히 처리하는데 열중하고...꼼꼼히 하나하나 행정업무를 지시하는데 일생을 보낸 일과 사랑에 빠진 전대미문의 장인정신의 황제 바실리우스 2세...내가 본받고 싶은 인물이다...바실리우스 2세같은 황제가 나라를 다스려야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바실리우스 황제는 2세가 딱딱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속은 굉장히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불탔던 사람이다...

일제시대가 좋았다

사병 아니라 장교로. 어디 식민지 혹은 합병국 국민을 군대 중장까지 진급시켜준 나라가 있었나?

일제시대는 원주민들을 인종적, 계급적, 신분적, 혈통적으로 이주민들과 구분하여 차별하면서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분리하여 노예와 종으로 삼고 그 땅을 새로운 이주민들이 차지한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경영과는 백팔십도로 다른 것이었다.

그런 차별을 하여 괄세를 하고 학대를 하고 노예로 종으로 부려먹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소원은 오로지 일본과 조선이 하나 되는 것이었다. 독일이 유대인에게 다윗의 별을 가슴에 달게 하여 독일인과 유대인이 구별되게 한 것과는 달리 일본은 조선인의 이름과 일본인의 이름이 달라서 구별이 되니까 그 구별을 없애려고 창씨개명을 내세워 제국주의 지배 국가가 피지배 국민에게 지배국 국민 이름 사용을 허가 한것이다.

 

독일인은 유대인들과 결혼은 고사하고 성관계만 가져도 처벌을 받았다, 나치의 법에 명문화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자국민들과 식민지의 원주민 사이의 통혼을 법으로 금지했다. 같은 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었고, 기차도 같은 칸을 타지 못했다. 대부분의 문화시설은 원주민 출입금지였다. 원주민 학생이 이주민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거주지부터 구역이 달랐다. 이것이 식민지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그런 차별을 두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동경대, 와세다대, 게이죠대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같이 공부했다. 물론 사관학교도 같이 다녔고, 임관도 됐다.

 

 조선인은 일본군 내에서 중장까지 달았다 홍사익 장군이다. 홍사익장군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도 중장까지 진급했다. 일본육사 출신도 아니고 구 한국군 훈련단 출신이다. 한국인도 노력만 하면 사법시험에 패스해서 법관이 될 수 있었다. 법관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지배계층이다. 이수일과 심순애, 홍도야 울지마라는 산파극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의 결혼은 전혀 금지되거나 억압되지 않았다. 둘이 사랑하기만 하면 결혼은 합법이었다.

 

일본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없애려고 광분했지 차별하려고 노력한 것이 별로 없다. 같은 문자를 쓰게 하고, 같은 옷을 입히고, 같은 말을 하게 하고, 같은 천황을 섬기게 하고, 같은 학교 다니게 하고, 같은 말을 쓰게 하고, 같은 동네에서 같이 살고, 같은 대중목욕탕에서 일본인하고 조선인이 같이 벌거벗고 같은 탕 안에 들어가 같이 때밀고 나왔다. 같은 이발관에서 같은 이발사가 같은 바리깡으로 조선인과 일본인 머리를 같은 요금 받고 똑같이 깎았다.

 

제국주의 시대에 전세계 어디에 이런 식민지가 있었나? 한번 대보라.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도 일제시대를 식민지시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제시대는 식민지배 시대가 아닌 것이다.

 

합병국 출신으로 장교, 장군이 될수 있는 제국주의 국가가 일본이다.


일제시대의 본질은 일본이 일본인과 조선인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차별하고 학대하기 위해 혈안이 된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1. 조선시대보다 인구도 2배 이상 증가

2. 굶어죽는 사람 감소 ===>> 근대적 농경법으로 식량생산 증가

3. 소학교(초등학교) 교육 의무화 ===>> 한글도 못쓰는 일자무식 소멸, 서울대학교 설립

4. 근대적 법체제 도입(형사, 민사) ===>> 예전에는 사또 말이 곧 법

5. 전기시설 등장

6. 조선인도 장군이 될 수 있었다 ==>> ex> 홍사익 장군

7. 근대적 건축물 등장 ==>> 일제시대 건물이 지금까지도 끄떡없음.

8. 공장 건설, 철도 건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1.도로와 철도가 깔려 교통과 유통이 편리해졌다.


2.유아 사망률이 감소하고 전염병환자 사망률도 감소하였다.


3.조선 말기 감소였던 인구 증가율이 증가로 바뀌었다.


4.보통 은행 예금이 늘어났다.


5.강도 건수가 줄어들었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빈농의 자식이

국민공통교육을 거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나라의 지도가 될수 있었나?

 세계 제국주의 국가중에 식민지의 귀족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합병국인들에게 보통교육과 평등한 기회를 준 국가가 있나? 근대화를 시키고, 1등국민 대우해준 국가가 있나?


박정희는 좆도 없는 빈농집안 거지 출신이지 그런데 일본 정규 육사에 들어갔고 만주국 장교가 되었다. 아프리카를 지배한 유럽인들은 절대로 원주민을 장교로 육성하지 않았어. 영국인은 인도인으로 장교를 육성하긴 했는데 인도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끄는 장교였지. 한국처럼 합병국 원주민이 장교가 되어 본토인을 부하로 두는 경우가 이례가 없는 경우다.

 

 

같은 2등 국민인 대만인에 비해 대우가 더 나았음.

 

홍사익 중장만 봐도 알수 있지.

 

 

실질적으로

1등 국민 - 내지인(일본인)

 

1.5등 국민 - 조선인

 

2등 국민 - 대만인


3등 국민 - 만주국인(한인, 만주인, 몽골인)


본토 국민과 합병 국민을 장교, 군인까지 신분을 상승시켜준말인가?

일제시대의 절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친일파였다...아니 친일파라는 단어조차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당시 절대다수의 조선인은 일본인으로서 행복하게 살았으니까


내가 반박한번 해볼까?
공출공납 따위는 일본또한 본토에서 실시되었고 본토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종군위안부는 일본여성도 존재하였다.


일제시대 친일파 수는 사실 수백만명이 넘고, 독립운동가는 많아봤자 수백명인데

그래서 킬구 선생이 일제 패망후 귀국당시 미국인 기자 마크 게인한테 말하길 일제시대 당시


반도 내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은 전부 다 친일파라며 비난했었습니다... ( 마크게인 일본일기 433p 참고 )

사실이 이런데도 어째서 한국인들은 왜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속기만 하는 것일까요?


야스쿠니 신사에 잠들어 있는 일만명이 넘어가는 조선인들께서 지금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 저승에서 뭐라고 생각할까....


저도 참 궁금하긴 하네요.


한국독립당 휘하 대한광복군 300여명. 태평양전쟁 참전 조선인 몇만명

 

이것을 보면 이씨조선 보다 일본제국주의 시대가 더 낫고, 행복했다는걸 의미합니다


본토, 조선부 둘 다 성장률이 비슷하게 꾸준히 세계 평균을 상회.

 


인구 수 1000만명 상승

수명 2배.

 


1911년 도로길이 828km

1937년 2만 7732km


철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함경선 5대  98한반도 종단. 총 연장길이 1942년 2223km


자동차, 우마차 등 운반수단 1911년 8만 1000대
1936년 98만 2000대


선박 총 톤수
1910년 7만 2000t
1937년 26만 9000t


통신기관 1905년 16개
1937년 1150개


1911년 회사 152개
1938년 3581개


조선인과 일본인을 능력에 따라 대체로 공정하게 취급. (조선인이 특혜를 받은 경우도 매우 많으며(지금의 무슨유공자들처럼) 후기로 갈수록 완벽히 공정해짐)

 


1910년 인구 1600만
1940년 2600만


공중보건, 의료개선->사망률 급격한 감소 (수명 2배)
유아사망률, 홍역, 콜레라, 천연두 등 감소. 식수 관리.


토지제도 개선. 농지 99.5% 국민 소유.


이후 지주제가 양극화 심화시키자 세금낮추기 위한 노력. (조선 때보단 1억배 살기좋아짐)


도시인구 1920년 3.4%, 1940년 11.6%


1939년은 1910년 수출액의 51배. 수입액의 35배.
총생산액에 대한 수출입 무역 비율은 1910년대 평균 23% 1920년대 평균 42% 1930년대 평균 54%


한국의 일본과 무역 초기: 쌀, 콩 수출, 면제품, 기계, 기구 수입
한국의 일본과 무역 중후기 : 면제품, 기계, 기구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남. (진정한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중.)


일본은 한국과 무역하면서 적자 계속보면서도 투자해줌(매년 조선부 예산 상당수를 본토에서 대줌. 수탈당한건가?)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인 상당수가 근대화가 뭔지 알게 되고 나름 엘리트도 생겨남


1910~1940년 총샌산에서 1차산업인 농림어업 비중 71%->43%
2차산업 광공업 비중이 8%->29%
3차 서비스산업 비중 21%->28%


식민지 한국의 연평균 인구성장률 1.3%
식민지 한국의 연평균 총생산 성장률 3.6% (세계 평균 상회. 일본 본토와 동일수준)


한국인 공장의 수 1910년 초 100개도 안댐
1920년대 말 2000개 초과.
1930년대 말 4000개 넘음


전체 공장 중 한국인 공장 비율 1910년 초 25% 미달.
1930년대 말 60% 초과.


식료품 비중 나타내는 앵겔계수 꾸준한 하락->생활 수준 개선.
1890~1920년대 한국인들 키 2cm 가량 더 커짐->생활 수준 개선.


저능한 공산주의자 척결.


일제시대때 한국 최초의 근대적 대공업이자 지주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성공한 자회사 경성방직주식히사 뜸.


중화학 공업 발달(이후 멍청한 한국인들이 지들끼리 분리해서 다부수고 다님. 저능한 민족)


반찬 없이 쌀만 처먹다가 콩, 조 등 잡곡 등 다양한 것들 먹으면서 영향 섭취의 균형 이룸. 채소류, 고기, 생선 등 소비량 크게 상승.

 


1930년대 이후 정규직 대량 증가.


노동자들 질적으로 성장.
정규교육 받은 노동자 증가. 전시때 일본 관리자들 징집당하자 한국인이 빈자리 채우기도 함(김대중 같은애)


일본인들은 열심히 쌀 생산, 유통 과정 세밀하게 관리, 양심적 통제->조선인 병신같은 무능한 지주들한테 영향줌. (엘리트들의 근면함 이끔)


조선시대 미개 신분제 일본 덕분에 비로소 공식적으로 사라짐.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천시도 사라짐.
중인, 향리 같은 어정쩡한애들이 사회 진출 활발히 하기 시작.
거머리같은 양반가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급락하기도 함->쓰레기 유교적 사상 박살낸 대일본제국


초 더러운 상투, 수염 박살.


여자들도 뭐같은 댕기머리 박살남.


신발도 그지같은 짚신->구두, 고무신 위주
의복도 존나 더러운 도포->두루마기, 쓰개치마->개량 통치마
여자든 남자든 간소화되고 실용적인 근로복 많이 입게됨


음식문화도 동서양이 적절하게 융화됨.


아무데나 시체 버리고 다니는 좆같은 풍습 없애고 공동묘지, 화장 같은 선진문화 활성화.
묘지 만드려면 허가 필요.
동물 도살같은 일은 장소 규정해줌. 청결, 근대적.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길 권장함.


더러운 똥묻히고 다니는 주제에 흰색입은 놈들 제정신차리게 해줌.


1920년대까지 조선인들 허세부리면서 보통학교 별로 안보내고 서당보냄.
근데 역시 보통학교의 우월함을 알게 되고 결국 자기들부터 보통학교에 미친듯이 보내기 시작함.


조선인들이 보통학교 증설해달라고 계속 청원하고 기금 모음.(거지새끼들이라 별 도움은 안됨. 하지만 일본의 자비로 대량 증설.)


1930년대 공업화 이후 이제 중등학교도 입학하려고 청원, 사립중등학교 설립 운동 활발히 펼쳐짐. 어리석은 조선인들도 일본의 선진문물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의 언어 사용의 미개함을 깨닫고 일단 조선어라도 배우라는 의미에서 최초의 한국어사전 발행. 의무교육으로 조선어 넣음. 지들나라 말도 못읽는 한심한 작자들이라 일본이 곤란해하지만 최선을 다해 근대화.


정신없는 도량형, 화폐, 어문 표준화해주신 대일본제국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통해 조선인들 교화시킴.


그제서야 겨우 조선의 문학에서 근대적인 문학이 나오기 시작함.

 

2차대전에 참전한 조선인들 숫자

 





연합군으로 참전한 숫자는 OSS통해서 30명이었나
중국에서 5,60명 훈련받고 80명 침투 계획 세우다 끝남.

 


이래놓고 승전국 입장으로 착각.
조선은 오스트리아 꼴 안 나서 다행이었지


조선에서 일본군 지원병 1만 6천명 모집하는데 80만명이 지원한 위엄.

 

 

양반 관료들에게 인간이하로

 노예같이 핍박받고   뜯기고 살던 이씨 조선시대..


근대법을   장착한  신문명의    새로운  지배층이 들어와

 기존의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 신분사회의 권력층을   대신하여

암흑의 땅에   문명을 불을 밝혔는데...


 헐벗고 굶주리던   일반 백성들에게

그것이 그렇게 큰 불행이고 슬픔이였을까.??

 

 


한국은 피해자인적이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대일본제국의 신민.

다이춍으로서 다이-쇼와 대에

일임을다하여 1등급의 황국 신민의 칭호를 얻은 것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군사침공을 받아 합병되고, 영국이 무갈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인도를 정복하고,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할양받았으며, 안남왕국과의 전쟁으로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프랑스, 근거날조로 스페인과 전쟁하여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복속한 미국...과 수십만 대군으로 독립전쟁을 치른 폴란드에 비교해, 조선은 '평화적으로 점령'당하고... 합병 내내 변변한 독립전쟁 한 번 없었다.

'조선은 '단 한사람의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력을 강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인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동학교주 손병희와, 5만 동학군을 이끌던 이용구, 그리고 송병준이 일본을 지원할 것을 결의하고, 만주 전선으로 군수품을 운반하는데 11만명, 경의선 철도 건설을위해 15만의 조선인이 봉사하였고...러시아 군의 동정을 살피는 데에 50명을 투입. 이과정에서 4, 5백명의 사상자를 냄....(조선은 왜 일본의 합병이 되었는가)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1905년 9월 5일 일본과 러시아간에 포츠머스 조약이 맺어지면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음

'한일 합방 당시의 종로거리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사를 하고 먹고 마시는 '일상'을 잃지 않았다.' (최린) 라고 회고...

 


만주에선 일제 헌병의 위세를 등에 업고 중국인을 차별했고(만보산 사건, 창씨개명 등) 또한 조선은 일본과 함께 미국에 대적해 싸운 적군이었는데...
강제로 끌고 갔다? 그것은 조선인만의 동원이 아니라, 본토의 내지인도 동일한 조건, 오히려 징병제가 실시 되기 이전의 기록으로 볼 때 총 조선인 지원자 수가 60만여명에 육박하고.... 총 2만여명의 조선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음...<야스쿠니신사문제자료집> 조선계 일본군의 잔악성에 대해서 연합군 포로 학대에 대한 증언과 싱가폴 리콴유 수상의 회고...

심지어는 조선인의 기개를 보여주겠다며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한 17세 소년도 있을 정도...

전투에 나가는 것이 너무 가슴 벅차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특공대로 뽑혀 명예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적군함대에 돌격하여 그들을 가루내어 보여드리겠습니다.
동포들이여,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특공대가 되어 이 역사를 지켜주오
어머니 아버지 용서하세요. 저를 용서해주실 걸 믿고 씩씩하게 나가겠습니다.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 박동훈의 육성 기록>

고종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 의해 살해 되었을 때, 이 사건을 일컬어 끔찍한 변고라 칭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를 선지자로 추앙하였다.

하늘이 동아에 복을 내려/뛰어난 인물을 낳으셨네/폭풍, 우레와 같은 위엄으로 막하(幕下)를 부리고/은택과 형벌로 국가를 경륜하며/왕을 받들고 패업을 안정시켜/유신을 크게 도왔으니/받은 작위는 공작이요/공훈은 기린각(麒麟閣)에 빛나네.

두루 대국을 헤아려/어진 자와 친하고 이웃나라와 우호를 맺으며/선지자로서 후지자를 깨우치니/진실로 현자라

(중략)

어찌 알았으랴 끔찍한 전보가/북쪽 변방(하얼빈)에서 올 줄은......

<고종 명의로 '태양'에 실린 제문>


조선왕조 대부분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고, 땅을 하사 받았으며...
조선왕조의 후예 영친왕은 천황가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황족회의에도 조선대표로 참석... 합병이후에도 고종과 순종은 천수를 누림. 심지어 유림들도 친일. 해방후 만들어진 반민특위에도 황군 출신자 포함. (오마이뉴스-이광수 체포 반민특위 위원 인터뷰) 황군으로 있으면서 해방후 광복군에 편입...- 자신은 강제 학도병으로 징병된 것이고, 남들은 전부 자발? 그럼 학도병 지원 유세라는 건 왜 했을까?- 황군출신자들이 해방직전 광복군에 들어가 독립운동했다고 구라를 까서 독립유공자가 됨.(MBC 8.15 친일파특집 다큐, 한겨레-가짜 광복군)

 


민족문제 연구소의 친일 기준을 볼 것 같으면... 정주영, 이병철 같은 기업가도 전부 친일파이고 심지어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도 친일파로서 애국가는 일제의 잔제.... 음악, 미술, 체육, 기업, 교육, 경찰, 군대, 법조... 등등 산속에서 은둔하며 화전이나 일구고 산 사람이거나 해외로 망명한 사람이 아니면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없다. 김구 지시로 작성된 반민특위 살생부의 명단이 총 268명 정도에 불과한데.. 지금은 그 규모가 어떻게 되어 있나?

반드시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서 300명도 안되는 명단을 작성했는데.. 지금은 수천, 수만의 사람이 친일매국노로 규정되어 있다. 친일매국노로 규정하는 근거도 상당히 희박하다. 대부분의 이유는 1.일제시대 공직에 있었다. 2. 잡지 언론 등에 친일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3. 친일단체라고 '소문' 난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4. 친일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등이다. 문인이나 음악, 미술계 등의 인물들이 상당수 포함된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코드정치에 입각하는지, 좌익경력이 있거나, 독립운동가로 오랫동안 인식되어져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는 변명으로 보호해 주기에 바쁘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여운형이다. 명의를 도용당했을거라는 둥,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는 둥..... 변호를 자처하고 나선다. 그리고 친러파였던 이용익 같은 인물들도 한없이 싸고 돈다. 그러나 김성수 같은 교육과 언론에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변론도 허용치 않는다.


한 때 이영훈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는 다수의 조선인 포주가 참여하였다. 산미증식계획으로 일본에 쌀이 수탈 된 것이 아니라, 쌀값이 비싼 일본에 쌀을 수출하여 소수의 조선인 지주와 중간상인들이 시세차익을 이용하여 폭익을 취하였다." 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뇌가 썩은 무리들은 '그럼 일본이 잘못이 없단 말이냐?' 하면서 맹공을 했었는데.... 이영훈 교수는 그런 발언을 한 적도 없거니와 그런것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일본의 잘못은 당연히 대전제로 삼고, 그러한 일본의 잘못에 동참한 조선인들에 대해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그러한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나 뇌가 썩은 무리들은 생각이 없다. 이성이 없어서 그저 욕설과 비난만 퍼부을 뿐이다. 논리적인 반박이라는 건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다. 조선인의 잘못을 가려내는 것과 그것을 반성하자고 하는 것은 결코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에 대해 불만을 품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친일파 청산에 결코 동의해서는 안된다. 누구는 자발적으로 개인의 부귀영달을 위해 친일하고, 나라를 팔아 민족을 배신했고, 또 누구는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성노예의 포주를 자처하고, 국내 부족분에 대한 고려 없이 쌀을 수출하여 폭익을 취했다는 것인지? 스스로 모순을 파고 있지는 않나?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한일합방에 조금 접하면, 병합을 통해서 전국민에 교육이 철저되어 근대적 의료 제도가 확립해, 농어업과 중공업이 흥해, 사회의 인프라 정비에 의해서 공업국가로서의 기초가 쌓아 올려진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종전 후, 독립한 한국·조선의 교육은, 한일합방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의 산물이었다고 규탄합니다만, 그것이 얼마나 역사의 실태를 무시한 제멋대로인 것이어, 자기중심적인 해석일까 네말이기도 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예를 들면 다음의 기술이 있습니다.
「일제의 목적은, 한국을 일본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로 해, 그들의 국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일제의 산업 침탈 정책으로 우리 민족의 경제활동은 큰폭으로 위축 해, 민족 산업도 그 발전이 억제되고, 침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에는, 너무 역사의 남의 눈을 속임이 있어, 나 등은 코멘트할 생각으로도 되지 않습니다.이조500 해를 모르는지, 고의로 은폐 하려고 하고 있다고 밖에 좋게가 없습니다.민족 산업의 싹을 잘라 버린 것은, 일본이 아닌 이조이며, 이조아래에서는 경제발전 등 꿈의 또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조말기 근대화를 주창하는 사람이나 선진적인 사상가는, 반역 분자로서 그 친족까지도 처단 되었습니다.그러한 사실을, 잊었다고에서도 말하는 것입니까.

 







왜 한일합방조약이 합법조약인지 지금부터 설명해 준다.

 

 


고종시대사 6집
년월일        1910년(庚戌, 1910, 淸 宣統帝 宣統 2年, 日本 明治 43年) 8月 29日(月)
기사제목        皇帝가 日韓合倂에 대하여


병합조약의 전문


韓國皇帝陛下와 日本國皇帝陛下는 兩國間의 特殊하고 親密한 關係를 回顧하여 相互幸福을 增進하며 東洋의 平和를 永久히 確保코자 하는 바 이 目的을 達成하기 爲하여서는 韓國을 日本帝國에 倂合함만 같지 못한 것을 確信하여 이에 兩國間에 倂合條約을 締結하기로 決하고 日本國皇帝陛下는 統監 子爵 寺內正毅를, 韓國皇帝陛下는 內閣總理大臣 李完用을 各其 全權委員으로 任命함. 이 全權委員은 會同協議한 後 左의 諸條를 協定함. 第一 韓國皇帝陛下는 韓國全部에 關한 一切의 統治權을 完全하고도 永久히 日本國皇帝陛下에게 讓與함. 第二 日本國皇帝陛下는 前條에 揭載한 讓與를 受諾하고 또 全然 韓國을 日本國에 倂合함을 承諾함. 第三 日本國皇帝陛下는 韓國皇帝陛下·太皇帝陛下·皇太子陛下와 그 后妃 및 後裔로 하여금 各其 地位에 應하여 相當한 尊稱·威嚴 그리고 名譽를 享有케 하며 또 이를 保持하기에 充分한 歲費를 供給할 것을 約함. 第四 日本皇帝陛下는 前條 以外의 韓國皇族과 其 後裔에 對하여 各其 相當한 名譽와 待遇를 享有케 하며 또 이를 維持하기에 必要한 資金을 供與할 것을 約함. 第五 日本國皇帝陛下는 勳功 있는 韓人으로서 特히 表彰을 行함이 適當하다고 認定되는 者에 對하여 榮爵을 授與하고 또 恩金을 與할 것. 第六 日本國政府는 前記 倂合의 結果로서 全然 韓國의 施政을 擔任하고 同地에 施行하는 法規를 遵守하는 韓人의 身體와 財産에 對하여 充分한 保護를 하며 또 其 福利의 增進을 圖謀할 것. 第七 日本國政府는 誠意와 忠實로 新制度를 尊重하는 韓人으로서 相當한 資格이 있는 者를 事情이 許하는 限에서 韓國에 있는 帝國官吏로 登用할 것. 第八 本條約은 日本國皇帝陛下와 韓國皇帝陛下의 裁可를 經한 것으로 公布日로부터 施行함. 右證據로 兩全權委員은 本條約에 記名 調印하는 것이다. 隆熙 4年 8月 22日 內閣總理大臣 李完用 印 明治 43年 8月 22日 統監 子爵 寺內正毅 印


[출전]
日省錄 隆熙 4年 8月 29日
承政院日記 隆熙 4年 8月 29日
純宗實錄 隆熙 4年 8月 29日
官報 隆熙 4年 8月 29日
日本外交文書 第43卷 第1冊 607號 明治 43年 8月 27日
大韓每日申報 1910年 8月 30日
續陰晴史 下 隆熙 4年 8月 29日
大韓季年史 下 隆熙 4年 8月

 

전권위임대표 임명은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이 했다. 반면, 일본측 대표는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이고 이 사람은 일본국 천황의 임명을 받았음. 다음은 순종황제가 이완용 총리대신을 전권위임대사로 임명한 임명장 원본. 한국에선 이태진 교수가 이걸 순종의 수결을 위조한거라고 주장하던데... 솔직히 이런 작자가 대학교수질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나라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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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방조약이 아주 합법적으로 체결되었는데 여기에 조선인의 '저항'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조항 중에 제3조와 제7조를 눈여겨 보아야 하는데.. 
3조에서 조선왕실에 대한 특권지위보장과 세비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조선왕실은 합방이후 일본제국의 왕족으로 편입되었고, 한해 세비 120만엔을 
일본 궁내청으로부터 지급받았다. 이 액수는 천황가 다음의 금액이다. 
그리고 제7조에서 조선(대한제국) 관료들의 유임을 명시하고 있다. 실제 대한제국 관리의 70% 이상이 일본제국의 조선령 관리로 유임되었고. 
이것을 거부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구나. 
저항도 없었고, 일본이 주는 은사금과 작위를 대부분 다 수락. 즉, 조선=친일국가로서 자발적으로 합방조약 성사.


다음은 조선의 친일왕족, 종친, 내각대신들의 명단이다.


【수작자】


(1) 을사오적
* 이완용(李完用,학부대신) : 1905 을사조약 때 내각총리대신, 1910 한일합방 공로로 훈1등 백작 1921 중추원 고문, 부의장 1920 후작 승급
* 이지용(李址鎔,내부대신) : 1904 한일의정서 협정 조인 1905 내부대신으로 을사조약 체결 1910 훈1등 백작 매국공채 10만원 중추원 고문
* 박제순(朴齊純,외부대신) : 1894 충청감사로 농민군 진압, 을사조약․합방 조약 체결시 참여, 경학원 대제학 1910 자작 훈1등 매국공채 10만원, 중추원 고문
* 이근택(李根澤,군부대신) : 1905 을사조약 조인, 합방 주역, 아들 李昌薰이 습작, 형 근호 동생 근상 합방후 자작. 중추원 고문
* 권중현(權重顯,농상공부대신) : 1904 러일전쟁 때 일본군 위문, 농상공부대신으로 을사조약 체결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5만원, 중추원․조선사편수회 고문


(2) 정미칠적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송병준(宋秉畯, 농상공부대신) : 일진회 조직, 1910 훈1등 자작과 매국공채 10만원, 아들 종헌 습작. 중추원 고문, 경기도 참사 1920 백작으로 승급, 사위 구연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
* 이병무(李秉武, 군부대신) : 1884 무과 급제 1896 일본 육사 졸업 1907 군부대신, 정미7적 1910 자작 매국공채 5만원
* 이재곤(李載崑, 학부대신) : 자작. 은사금 5만원. 1910-20.5 중추원 고문
* 임선준(任善準, 내부대신) : 자작. 은사금 5만원. 1910-19 중추원 고문
* 조중응(趙重應, 법부대신) : 민비시해 가담. 고종 퇴위 강요. 1909 친일지 [법정신문] 발간. 자작. 1910-19 중추원고문,  1916 대정친목회 및 한성부민회 회장 일훈 1등 대욱장
* 고영희(高永喜, 탁지부대신) : 1907 이완용내각의 탁지부․법부 대신, 정미7적.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10만원, 고희경 습작(1920 백작으로 승급)


(3) 경술국적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윤덕영(尹德榮, 시종원경) : 1908 시종원경, 1910 자작, 1917 순종에게 일본 왕실 참배 종용, 1925 중추원 고문, 1940 중추원 부의장
* 민병석(閔丙奭, 궁내부대신) : 1906 표훈원 총재 시종원경 겸 내부대신 1909 이토 조문사절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10만원 1911 이왕직 장관 1939 중추원 부의장. 이완용의 妻內從.
* 고영희(탁지부대신) : 정미칠적 참조
* 박제순(내부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이병무(친위부장관) : 정미칠적 참조
* 조민희(趙民熙, 승녕부 총관) : 1885 문과 급제 후 평안도관찰사, 주일공사.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5만원, 1919 중추원 고문. 이완용의 처남.
* 조중응(趙重應, 농상공부대신) : 정미칠적 참조


(4)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된 왕실 종친들
* 이재완(李載完)-고종의 종형, 즉 흥완군 최응(最應)의 아들로 대원군의 조카. 1899 궁내부대신 1905 보빙대사로 을사조약 감사 사절단 1910 훈1등 후작, 매국공채 33만6천원
* 이재각(李載覺)-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손으로 完平君 승응(昇應)의 자. 1905 특명대사로 러일전쟁 승전 축하 1910 훈1등 후작, 매국공채 16만8천원. 1935년 사망
* 이지용(李址鎔)- 고종의 종질. 을사오적 참조.
* 이기용(李埼鎔)-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完林君의 子, 증조부가 곧 남연군. 8․15까지 생존 1910 자작 매국공채 3만원 1937 조선국방협회와 동요회 발기인 1945 칙선 귀족원 의원
* 이해창(李海昌) : 한성판윤 1907 종1품 1910 후작과 매국공채 16만8천원. 1945 사망
* 이해승(李海昇) : 1910 후작. 매국공채 16만8천원.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5) 친일에 앞장선 순종의 외척
* 윤택영(尹澤榮)- 海豐府院君, 순종의 장인. 1899 시강원 시종관 1910 후작 매국공채 50만4천원, 1927 파산 선고로 실작
* 윤덕영(尹德榮)- 海豐府院君 윤택영의 형. 처 김복완은 애국금차회 회장. 1908 시종원경 1910 자작 1917 순종에게 일본 왕실 참배 종용 1925 중추원 고문 1940 중추원 부의장


한국은 대동아전쟁에 일본과 함께, 아니 일본인으로 참전한 전범국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피해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대동아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에 기뻐했으며 미국의 침략에 분개했다. 또한 많은 젊은이들이 애국심에 불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일본은 조선에 비해 훨씬 강대국이었으며 중국과 맞먹거나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조선과 비교할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일본의 통치. 중국을 물리친 뒤 일본은 이씨 정부를 개혁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러시아는 일본에 반대하는 코리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코리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기를 원했으며 일본은 러시아를 코리아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이 두 열강은 결국 1904년 전쟁으로 맞붙었다. 놀랍게도 일본은 육지와 바다에서 러시아를 격파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고 이씨 왕조를 끝냈다. 코리아는 일본제국의 가장 큰 해외 영토가 되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日章旗)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해군의 지원병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감격에 못 이기어 손끝을 깨물어서
나라님의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

나라님 허락하신 그 은혜를 잊으리
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반도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핏줄
한 나라 지붕 아래 은혜 깊이 자란 몸
이 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대동아(大東亞) 공영권(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침
구름을 헤치고서 솟아 오는 저 햇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 손을 합장하고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지원병으로 본 조선인     -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하라 도키사부로(鹽原時三郞)


진정한 애국을 잊지말자

 

2등식민 조선인이였던 그 은혜

 

조선을 발전시켜주고 계몽시켜주고 근대화 시켜주었던 일본의 은혜

 

 

영원히 잊지말아야 할 지어다


nadal's prime is basically his all career unlike what delusional nadal fans try to make him to be like federer

nadal prime is not that good..nadal is famous for having no up and down in his games, always play the same level because of his extreme de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