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3, 2014

그리스에서 중국으로 기하학이 전해졌다

마테오리치를 만나기전까지는 기하학도 모르고 살았던 미개 황숭이들.jpg

코카소이드연합2014.04.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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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가 처음으로 깊이 사귄 중국인은 1589년에 만난 구태소(瞿太素)였다. 구태소는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지적 호기심이 강한 명문가 자제였다. 

그는 연금술을 배우려고 리치를 찾아왔지만 리치에게서 서양식 계산법, 기하학, 측량술, 시계와 천문기구 제작법 등을 배웠다. 그는 리치의 학식과 인품에 매료되어 늘 리치를 칭송했고, 이것은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리치의 평판이 높아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리치는 예부시랑 섭향고(葉向高)와도 친분을 쌓았다. 그는 리치와 그의 후배 선교사들을 적극 도왔다. 리치는 기성 유교 질서에 반항한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와도 만났다. 이탁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명석하고 온화하다.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해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늘 초연한 태도를 지키며 토론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단연 인상적인 인물이다.”

 

리치와 가장 친밀했던 인물은 세례교인이기도 한 관리 서광계(徐光啓)와 이지조(李之藻)였다. 이지조는 선교사들의 구술을 필사하고 많은 서양 학술서를 번역했다. 그는 특히 가톨릭 선교사들의 한문 저작을 모은 [천학초함]을 편찬했다. 서광계는 리치에게 천문, 역법, 지리, 수학, 수리(水利) 등을 배우고 리치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학 번역서 [기하원본]을 펴냈다. ‘기하학’이라는 말의 연원이 이 문헌이다. 그는 고향 상하이에 천주교당을 설립했다. 리치는 황족인 건안왕(建安王)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는 리치를 ‘사부’(師傅)로 칭하며 후대했고, 리치는 그에게 [교우론]을 헌정했다. 리치는 그밖에도 많은 중국인 관료, 지식인들과 교유했다. 그들은 ‘서양에서 온 유사(儒士)’로 리치를 대했다.


http://m.dcinside.com/view.php?id=history&no=1241241&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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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는 가늠하기도 힘든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인들은 무조건 일본이 보통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 일본을 최고급 기술력으로 추켜세우고 우상숭베하고, 유럽나라들이 최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도 별거 아니라고 얕본다..

팩트를 말하고있는데 뭔소린지...포르셰가 독일차닌깐 렉서스는 안된다고 말하면 안되나요? 팩트인데...아무리 기술력이 압도적이라도 우리일본보다 앞선다고 팩트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인가? 작년에 포르셰가 우승했어요 누가 뭐래요? 올해도 포르셰가 우승했고...